매부리의 푸른 둥지 - 기억의 콜라쥬-바시르와 왈츠를

기억의 콜라쥬-바시르와 왈츠를 :: 2008/12/08 21:31


트레일러

영화감독 아리 폴만은 80년대 초반에 같이 이스라엘군에 복무했던 친구로부터 최근 2년간 레바논 전쟁의 기억이 기이한 악몽의 형태로 되살아나 괴롭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정작 자신에게는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뇌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나체로 바다에서 유영하는 자신과 동료들, 황폐한 도시의 밤하늘을 찬란하게 밝히는 조명탄,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갔더니 마주친 울부짖는 무슬림 여인들의 인파-이것으로 끝나는 단편적인 영상이 영화 초반의 아리가 기억하는 유일한 '레바논'이었습니다. 그 기억 속에 등장하는 친구를 시작으로, 같은 전쟁터에서 복무했던 9명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전쟁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다큐멘터리이기에, 주인공인 감독 아리 폴만을 포함해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육성은 인터뷰한 그대로의 것을 사용해 영상화했습니다. 주제의 민감함으로 직접 등장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비단 그런 필요성에 머무르지 않고 애니메이션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린 연출이 돋보입니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르네상스가 연상되는 강렬한 음영대비의 3D 플래쉬 애니메이션 기법이 (물론 [바시르와 왈츠를]은 흑백이 아닌 칼라지만) 때로는 사실성을, 때로는 기억과 꿈의 경계에 있는 몽환성을, 그리고 그 기억과 꿈 속에 남아있는 전쟁의 비현실적인 광경들을 효과적이면서 미학적으로 표현해냅니다. 가장 처음 떠오르는 기억 속에 있는 발 밑에 전사자와 부상자를 가득 실은 채 전차를 타고 가는 장면과, 이어서 착륙장에서 수많은 전사자들의 몸 위에 덥힌 찬란히 빛나는 덮개가 던져주는 강렬한 이미지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실험주의적 뮤지션 막스 리히터의 사운드트랙 역시 80-90년대 유행가부터 클래식까지 응용해가며 영화의 독특한 느낌을 잘 살려주는데, 특히 전쟁의 그야말로 아스트랄함과 허무함을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해낸 장면에서 영상과 음악의 환상적 조화는 극대화됩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제목의 근원이 된 '왈츠' 장면 역시 그렇습니다. 또한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개인적 회고록'을 기본 틀로 깔고 있는 이 영화의 속성과도 잘 어우러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기억은 상당히 애매하면서 이기적이고 유약하기 때문입니다. 불쾌해서, 혹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애써 억누르거나 비틀리는 기억은 비단 전쟁같은 극단적인 경험이 아니라도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표현이 가능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도 '기억'을 다루는 이 영화의 주제와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기억의 모호함, 전쟁이라는 일상의 초일상성, 그런 모호한 기억 속에 남겨진 전쟁의 파편을 하나하나 모아서 불안정한 콜라쥬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아리는 서서히 전쟁의 기억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내심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도달할 수밖에 없는 종착역, 1982년 사브라-샤틸라 수용소 대학살이 있었던 날의 자신의 모습을 향해 서서히 다가갑니다.  

1982년, 이스라엘이 괴뢰정권 수립을 위해 레바논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추진한 기독교인 바시르 자마엘이 대통령 취임 9일전 암살당하자, 바시르의 열렬한 지지세력이었던 레바논 기독교 무장세력 팔랑헤는 배후에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복수를 위해 애꿎은 사브라-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합니다. 사흘간 약 3천여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도륙당한 것입니다. 여기서 난민촌을 관할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은 군부의 명령에 따라 팔랑헤를 들여보내주고 이틀밤 동안 조명탄을 발사해 학살이 거행중인 수용소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이 사건은 서방언론에 대대적으로 보고되고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크 샤론은 학살 방조 (혹은 팔랑헤와의 밀약 혐의) 책임으로 해임...되지만 어차피 20년 뒤에 이스라엘 총리 자리까지 이르게 되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습니다. 아리 폴만은 무엇보다 이 끔찍한 사건의 현장에 있었음에도 전혀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의구심과 어쩌면 죄책감을 느끼고 세계로 흩어진 친구들을 찾아 전쟁 경험담을 모으는 여정을 영화 속에 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영화 자체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감독 자신의 말을 빌리면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매우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여정인 것입니다. 단순히 기분 좋은 젊은 날의 추억으로 끝날 수 없는 피로 얼룩진 무거운 기억이자,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리는 그 날의 기억을 되찾을까요? 지금 명동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중이니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고, 힌트를 드리자면-이것은 언제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바시르와 왈츠를]은 [교도관 나오키]가 주인공의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결국 비껴나가버린채 보여주지 못했던 진정한 '진상'을,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어떤 식으로 내면화, 정당화, 정상화하는지 그 이면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 성공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상담역인 친우가 마지막에 이르러 그의 '기억'을 해석하고 죄책감을 위로하는 말을 하고 이것으로 영화가 결국엔 이스라엘 입장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듣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친구의 위로의 말이며 그에 대해서도 아리는 침묵으로 일관하기에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리와 그의 친구들은 망각의 형태로든, 왜곡이나 객관화의 형태로든 평생 지워지지 않을 피묻은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야할 것임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너무나 명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구원이 될지, 혹은 괴로운 기억의 재림이 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작품의 진실성과 호소력에 있어 그들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생각나서 덧붙이지만, 결국 이 영화의 중요성은 '기억하는 것' 혹은 '기억하려는 것(!)'의 의미와 힘을 상기시켜준 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20여년 뒤에야 아리를 괴롭히는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는, 즉 잊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괴로움의 근원이 죄책감인지 단순한 꺼림찍함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잊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를 괴롭히는 원인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음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여정이기도 하지만 어떤 책임의식을 동반한 것이라고 할까요. 이것으로 그가 용서나 구원같은 거창한 것까지 추구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잃어버린 것' 자체가 그에겐 고통이고, 역으로 '기억하려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괴로움을 덜하려는 행위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특히 요즘들어 너무 마음이 유릿장같아서 과거사를 망각하거나 환타지로 만드는 분들께는 굉장히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군요.

[바시르와 왈츠를]은 현재 명동 스폰지하우스(구 중앙시네마 자리)에서 상영중입니다.


이하는 별로 안 진지한 이야기

2008/12/08 21:31 2008/12/0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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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산초어 | 2008/12/08 22: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전 메가박스에서 할 때 봤어요. 마지막에 전환(...)될 때의 임팩트는 상당했지요.
    제가 볼 때엔 펑펑 우는 관객도 좀 있고 그랬어요.

  • BACTERIA君 | 2008/12/09 16: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몇일전에 관람했습니다.
    워낙 극찬을 받았던 영화라 기대반 호기심 반으로 갔다가 역시나 만족하고 나온 영화랄까요 ㅜㅜ
    전 왈츠장면의 연출도 좋았지만 과수원에서의 연출도 참 인상깊더군요 ㅜㅜㅜ 다른 연출에 비해서 과수원 연출은 좀 진부하지만 제가 또 중2병 말기 환자라 그런 연출도 참 좋아합니다. ㅇ<-<

  • 시바우치 | 2008/12/09 23: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산초어님/ 강렬했지요. 감독 말로는 [영화를 보고 그냥 그림 이쁜 영상을 봤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 강조하고 싶어서] 기록영상을 삽입했다는군요. 마지막에 그 여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못 알아들어도 그 비통함은 그대로 전달되서 사실 저도 가슴이 짠해지더군요.

    BACTERIA君님/ 아 과수원에서의 장면도 좋았죠 시적이고...음악과도 잘 어우러져서...
    저같은 경우 가장 처음 돌아온 기억이었던 발 밑에 시쳇더미를 싣고 어둠을 향해 발포하는 생생하게 끔찍한 장면과 시체들을 덮은 덮개가 나열되어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몽환적인 장면이 이어지는 것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그런데 보통 아무도 그 장면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안하니까 뭐 인상적인 장면이라 해도 개인차가 있달지 그래서 의미있는 거죠^^

    냉장고님/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우리나라 영화회전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내릴 수 있으니 어서 보세요^^

  • 냉장고 | 2008/12/11 1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래도 전 이런 류가 식상하다고 생각하는게, 전쟁을 겪었거나 혹은 그와 동등한 상황(?), 뭐 예를 들자면 폭력시위현장의 전의경이라거나... 뭐, 그 곳에서 폭력을 당함+(or)폭력을 행사해도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기때문에(제가 보기엔), 과거 기억에 의해 괴로움을 겪는 사람(혹은 캐릭터)들을 보면(아, 폭력을 당한 사람의 괴로움이 당연히 더 크죠, 더 상처를 치유하기도 힘들고) '뭐야, 약해빠져가지고..'같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폭력 행사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다는 건 건강한(?) 정신의 인간이란 의미도 되기때문에 뭐라고 할수는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자랑스러운 듯 경험을 늘어놓는 쓰x기같은 존재들도 너무 많기때문에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 류의 내용이랄까요...

    • 시바우치 | 2008/12/11 16:06 | PERMALINK | EDIT/DEL

      물론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다 멀쩡히 사회생활 하고 직장 다니고 먹고 살아갑니다. 랄까 무슨 만화나 게임 캐릭터도 아니니 현실에선 대부분 그렇겠지요. (픽션의 경우 대부분 생계가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므로 히키코모리 or 초딩계 악당화) 맨 처음에 감독에게 악몽을 상담한 친구도 유능한 회계사구요. 전쟁 체험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듯이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엄청나게 트라우마틱한 체험을 했는데도 충격적일 정도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도 있고 마치 남의 일처럼 거리를 두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기본적으로 인간은 터프하니까 망각이든 왜곡이든 외면이든 다양한 기재로 아무리 기막힌 상황이라도 '정상화'하지요.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중요한 건 과거로 낑낑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정상화' '내면화'하는 것인지입니다. 아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20년의 세월이 지나 상당히 거리를 두고 냉정히 생각할 수 있는 지점에서죠. 그리고 굳이 전쟁이 아니라도 어떤 식으로든 억압된 기억(트라우마든 바보틱해서 봉인한 거든)이 불현듯 튀어나와서 깡쇠주 들이키게 하는 경우야 얼마든지 있달지...뭐 중년 아저씨들이 여리여리한 유릿장같은 감수성으로 대놓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랄까 다큐니까 그러면 쪽팔려서라도 자제를 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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